사순 제5주 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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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담과 기도
민희숙(플로라,1-2(남변) )
저녁미사에서 냉담과 기도에 대해 강론을 듣다가 문득 잊고 있었던 지난날의 기억 한 조각이 떠올랐다.
1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의욕도 많고 욕심도 많아서 늘 육신은 피곤에 지치고 휴일이면 밀린 집안일이랑 지인들의 경조사까지 챙기려니 몸이 몇 개라도 부족할 것 같았다. 그때 ‘지금 너에게 종교는 사치다’ 라며 속삭이는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냉담으로 돌아서고 말았다. 열심히 사는 동안 바라는 것들을 조금씩 이루어 가는 듯도 했지만 생각만큼 만족스럽거나 행복하진 않았다. 우연히, 원예치료사 자격증 있는 것을 안 지인의 끈질긴 권유로 꽃과 식물을 이용해 환자 심신의 치료효과를 높이기 위해 요법을 진행하게 되었다. 건강하던 사람이 갑자기 암 진단을 받고 좌절하는 환자들을 보면서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보람도 느끼던 어느 날 새로운 환자가 참여하게 되었는데 주변에 민폐를 끼치고 거칠고 부정적이어서 마치고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의자에 앉아 있을 때 그 환자가 다가와서 ‘이런 일을 하는 분은 착한 사람 일테니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하고는 휙 나가버렸다. 한 주 동안 부담감으로 지내다가 마침 성모당 부근으로 차를 통과하면서 마음속으로 무릎을 쳤다. 대구 남산동 성모당은 병자들의 병을 낫게 해준다는 치유와 기적의 장소로 알려져 평소에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러 오는 곳이다. 그 아래에 있는 성직자 묘역 입구에는 라틴어로 “오늘은 나, 내일은 너,”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숙연해 지는 곳이기도 하다.
동전 300원 통에 던지고 촛불에 불 켜서 기도하니 마음에 평안해 졌다. 다음 날 숙제 다 마친 이이처럼 기쁜 마음으로 갔을 때 그 환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그 후로도 영영 볼 수가 없었다. 촛불기도에 재미 들린 사람처럼 나는 매일 매일 성모당을 찾아갔다. 강론 중에 신부님께서 기도가 뭐라고 생각하냐고 반문했을 때 그때도 돌아가 생각해보니 기도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 소리에 긴 냉담 생활을 끝내고 성당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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